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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ro] 한 줄도 너무 길다

1. 인생의 맛/Book & Film

by Patti Kim 2009. 1. 6.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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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책을 선물 받기는 처음인 듯했다. 보여지는 것과 다르게 개인적으로 시집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류시화의 하이쿠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는 탁월한 선물이었다. 미국의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여러편이 실려있고 하이쿠에 대해 소개되며 직접 아이들에게 기억나는 순간을 하이쿠로 표현해 보라는 과제를 낼 정도로 그 위상은 대단하다.

이쿠는.
시가 되기에는 너무나 짦은 17음절, 오로지 음수율에만 의한 정형시. 문법적으로 보면 일본어가 서툰 사람들이 어눌하게 짜맞춘 문장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한 표현. 다른 언어로 번역하면 더욱 더 의미를 알 수 없는, 어쩌면 무의미를 지향하는 듯한 '하이쿠'

이런 하이쿠가 서양에서 근대 영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 계기는 에즈라 파운드를 중심으로 한 이미지스트 시인들의 하이쿠 경험이었다. 파운드가 처음으로 하이쿠를 접한 것은 그의 나이 20대 초반, 1908년 7월11일에 발행된 영국 잡지<뉴에이지>를 통해서였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는 메이지유신으로부터 40년 후의 일이다. 파운드는 이 잡지가 발행되기 2개월 전 런던에 도착했는데, 마침 거기에 하이쿠가 실려 있었던 것이다. 하이쿠를 이미지의 시로 생각했던 파운드는 나중에 자신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3년 전, 나는 파리의 콩코드 지하철 역에 내렸을 때 우연히 아름다운 얼굴을 보았다. 이어서 두 사람, 아름다운 어린아이의 얼굴과 아름다운 한 부인을 보았다. 그날 나는 하루 종일 이 만남이 나에게 주는 의미를 표현하는 말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저 예기치 않은 느낌에 필적하는 아름다운 말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나는 30행의 시를 썼지만, 그것은 소위 '이류'작품이었기에 버렸다. 반 년 후에 그 길이의 반 정도 되는 시를 썼다.


즈라 파운드는 하이쿠를 "일종의 중층형식"이라고 말했다. 즉 '하나의 사고를 다른 사고 위에 쌓는 것'이라고 파악한 것이다. 또한 그는 "이런 류의 시에서는 어떤 사건이 내면화하여 객관화를 완성하든지 아니면 주관화를 원성한다. 그 정확한 순간을 기록하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파운드는 이를테면 그 '순간'에 시선을 집중한 시인이었다.   - 김점례(전남대학교 일어 일문학과 교수)<일본문화의 힘 >중에서

하이쿠는 하나의 시이기 이전에, 안과 밖을 구분하고 동류에게만 열려 있는 등 공동체 의식이 강하며, 고도의 양식미를 추구하는 일본문화의 단면이 가장 잘 드러나는 언어문화의 응축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쿠로 일본이라는 공동체의 문에 노크하고 그들의 마음을 향해 인사함으로써 일본인으로 하여금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이다.
하이쿠적 커뮤니케이션. 메시지에 집착하지 않기, 감성적 이미지로 마음 표현하기, 어떤 작품에 대한 감상을 놓고 정답을 찾기 보다는 여러 의견에 귀기울이되 결코 부정하지 않기.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이 커뮤니케이션 방법은 직설적이고 옳고 그름에 단호한 우리의 그것과 사뭇 달라보인다. 어쩌면 지금의 절박한 상황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서로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의 차이가 상대를 더욱 곡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적어도 서로 헐뜯고 찢겨나가는 지금의 모습에 또 다른 긍정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적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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