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푸드트립] 국내: 제주: 삶이 여행, 또 여행이 삶: 서울사람이 찾아간 제주음식 4종

3. 한국의 맛/맛집 기록

by Patti Kim 2020. 7. 7. 16:43

본문


제주. 오랜만이다.
여행과 일상의 경계 없이 지인들을 만났고, 일상처럼 일을 했고 삼시세끼를 먹었다. 낯선 공간에서도 현지에서의 어느 정도 머무른 시간이 있고 또 생활 정보가 있는 친구들 덕분에 관광객이라 당했다는 괜한 원망 없이 맛있고 즐거운 식당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전주에서 콩나물국밥을 먹고 안동에서 찜닭을 먹어야 한다는 강박 없이 제주에서 시간을 즐기고 나니 특별하지 않은, 그러나 맛 있는 한 끼를 만났다.

 

1. 중국집마씸
제주 서쪽 짬뽕과 탕슉 맛집.

한경면에서 로컬 중국집을 찾았다. 항상 줄을 서서 먹는다는 짬뽕이 맛있는 집 <중국집마씸>이다. 제주에서 간판이나 팻말에 "~마씸"이라는 표현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직원분께 여쭤보니 ~이다의 BE동사 느낌이란다. 중국집마씸은, 그러므로 <중국집입니다>라는 뜻이겠다.

 



황태와 오징어를 비롯한 각종 해산물과 신선한 야채를 푸짐하게 넣어 만든 짬뽕은 매콤하면서도 시원한 국물이 일품이다. 고추기름이 잔뜩 떠 있는 뻘건 국물을 상상하던 내 눈을 의심하게 한 주황빛의 뽀얀 국물이 인상적이다.

탕수육은 바삭 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탕수육>으로서의 제 역할을 출중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50석이 가까운 홀 안에서 동해 번쩍 서해 번쩍 날렵하게 서빙과 상치우기, 주문 받기, 결제하기를 하고 있는 직원은 외식업에서 박지성급 멀티플레이를 보여주고 계셨다.

 


함께 식사를 한 일행의 말로는 호텔 중식당 출신의 주방장이 운영을 하고 있다는데 메뉴에 대한, 또 품질 좋은 식자재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식당 곳곳에서 느껴졌다. 중식당에서 흔치 않은 오픈 키친 형태로 식당 입구부터 줄을 서서 대기하는 손님들 우측에 위치한 주방에서의 요리하는 모습은 꽤 볼만한 구경거리다. 요리하시는 분들은 그런 시선이 부담스러우실 테지만.

양이 푸짐하고 맛이 좋았고, 식사메뉴 넷과 탕수육, 그리고 제주 유산균막걸리 2병을 먹었는데도 5만원이 나온 걸 보면 가성비도 좋았다. 

막걸리와 중식의 궁합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제주에서만 유통된다는 제주유산균막걸리는 산도가 강하고 바디감이 약한 게 입맛을 돋구기 좋았다. 다른 사람 입맛은 돋구더라도, 내 입맛은 그만 돋궈주길. 많이 먹었다 아이가.


중국집마씸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두신로 78


2. 방어회와 회덮밥: 월척수산

제주에 와서 회를 먹지 않으면 아쉬울 거라며 지인들이 점심 메뉴로 회를 추천했다. 일정이 있어서 제주공항 근처에 들러 볼 일을 본 뒤, 동문시장으로 향했다.

제주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상설재래시장이라는데, 이번에 처음 방문했다. 수산시장과 재래시장이 혼합되어 있는 모습이 서울의 광장시장과 노량진수산시장을 합쳐 놓은 분위기였다. 큰 규모에 맞춰 출입구도 열 곳이 넘었다. 무지한 상태에서 이곳을 들렀다면 분명 길을 잃었거나, 지도 어플에 의존한 채 어떻게든 시장 밖으로 빠져나가려 애썼을 테다.

다행히 함께 한 일행 중 동문시장은 눈을 감고도 다닐 정도의 제주 네비가 있어 횟집이 몰려 있는 골목을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주차는 주차동 위에 했으나, 토요일임에도 차가 너무 많아 주차 공간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광어회를 먹으러 들른 곳은 <월척수산>이었다.
광어와 방어를 살짝 고민하였지만, 빠르게 광어로 노선을 잡고 광어회를 큰 것으로 주문했다. 상차림은 별도의 비용이 있었으나 꽤나 푸짐하게 갖가지 메뉴들이 차려지는 덕분에 만족스러웠다. 음식을 주문하고 10분 만에 회가 담긴 접시가 등장했는데, 어쩜. 

광어가 아니라 방어였다.
 
메뉴를 가져온 직원에게 메뉴가 잘못된 것 같다고 얘기하자 주문을 받았던 장년의 아주머니가 황급히 달려 오셔서 깜박하셨다며 사과를 하셨다. 이미 피를 본 생선을 어찌하나. 가격은 동일했고 광어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기에 이미 생을 마감한 방어를 먹기로 했다. 그리고는 지나가는 말로 "그럼 광어는 서비스로 주세요."라고 흘렸는데, 잠시 뒤에 거의 <광어 소(小)자>정도의 푸짐한 양의 광어회를 서비스로 제공받았다. 오예.

 

 


푸짐한 상차림과 방어, 광어를 흡입하다 보니 배가 금세 불러왔다. 매운탕까지 끓여 먹었다. 그리고 나서도 눈 앞에 남은 회가 적잖이 보였다.

"어떻게 회를 남겨?"

이미 배가 부른 상태였으나, 일행 한 명이 밥을 비벼먹을 수 있는 냉면기와 밥 2공기를 요청했다. 센스 있는 직원 분은 커다란 그릇에 야채를 듬뿍 담아 가져다 주셨고 우리는 밥과 남은 회를 넣고 초고추장을 찍찍 뿌리고 쓱쓱 비벼서 회덮밥으로 남은 회를 모두 소진했다. 배가 부르다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가고, 테이블에 음식물 하나 남김 없이 깨끗이 해치웠다.
 
4인이 방어회 대(大)자와 매운탕, 푸른밤과 맥주 등을 즐겼고 78,000원이 나왔다. 관광지 횟집보다 꽤 저렴했다.

월척수산(동문시장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관덕로14길 10


 

3. 두툼 짜투리: 가미돈
제주똥돼지, 흙돼지, 오겹살 등의 돼지고기 관련 단어는 들어봤어도 "짜투리고기"라는 표현은 이번에 처음 접했다.

고기 한 번 구워 먹자고 들린 <가미돈>은 장년의 인심 좋아 보이는 부부가 운영하는 로컬 식당이다. 관광지와는 전혀 관계 없는 주거지에 위치한 식당이라 관광객이 알고 찾아오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숯불에 구워내는 토실토실하고 육즙을 꽉 잡고 있는 고기가 인상적였다. 강된장과 밑반찬을 몇 가지 제공해주셨는데 밑반찬도 하나같이 맛이 좋아 몇 번을 리필했는지 모른다. 내가 주인이었으면 분명 불쾌할 정도로 몇 번을 요구했는데, 아주머니는 그저 "맛있어요? 많이 먹어요."라며 계속 가져다 주셨다.
 

 


숯불에 구운 고기도 맛이 좋고, 밑반찬도 조미료 없이 엄마가 만들어준 집밥 느낌이어서 좋았다. 돼지고기는 한라산과 함께 했다. 요즘은 서울에서도 한라산을 파는 곳이 종종 보이는데 나는 제주에서야 처음 맛을 봤다. 기름기를 싹 씻어주는 느낌이고 개인적으로는 다음날 숙취가 없어서 좋았다. 

좋다는 말을 계속 반복하게 되는 식당. 아참. 가볍게 지나갈 뻔한 강된장은 나중에 탄수화물이 부족하다며 추가로 주문한 공기밥을 만나 그 빛을 발했다. 하얀 쌀밥에 강된장을 비벼 먹었는데, 여지껏 먹어 본 강된장과 다르게 담백함보다 칼칼한 맛이 강해서 개인적으로 취향저격이었다.

인심 좋고 가격 좋고 맛 좋았던, 그저 좋았던 식당이다.

가미돈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도길 10-2


4. 닭발과 듬직한 고기국수 feat. 소주 한 잔: 잔치집국수

한밤 중에 야식으로 닭발이 당긴다는 지인과 뼈가 있는 닭발은 아직 수준이 닿지 않았으나 그저 배가 고프다는 나를 포용력이 큰언니와도 같은 친구가 모슬포항 근처 허름한 식당으로 안내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깔끔하고 신속하게 운전을 할 수 있는 거야, 여자가. 운전실력이 그저 부러운 친구의 한밤의 제주 드라이브를 마치고 도착한 식당은 제주 현지사람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잔치집국수>였다.

아주머니 혼자 운영하는 곳에 오후 10시가 넘었는데도 식당 안의 대부분의 자리가 차 있었다. 들려 오늘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 이야기는 단어 단어를 띄엄띄엄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였는데, 제주도 방언이란다. 아빠 나이는 되어 보이시는 아저씨들도, 갓 스물이 되었을 법한 학생들도 해석하기 어려운 이야기뿐이었다. 제주도 방언도 또 다른 제3언어와 같이 배우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 것 같이 표준어와 상이했다.
 
닭발과 고기국수를 주문하고 야식이라며, 한라산을 꺼내 들었다.

이곳의 메뉴는 개인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조합이다. 닭발과 수육, 닭볶음탕, 고기국수, 김밥 등이 그러하다.

궁극의 맛, 고기국수 @잔치집국수, 제주도

 

 

이번에 처음 <고기국수>를 접한 것도 늦은 감이 있지만, 둔탁한 고기 국물의 칼국수나 일본라멘이 떠올랐다. 예전부터 고기국수는 별도의 야채나 향신료 없이 돼지뼈와 고기만 물에 넣고 끓여낸다고 하는데 요즘은 관광객이나 젊은 사람들의 기호에 맞춰 국물을 개운하고 깔끔하게 만들려 멸치육수를 섞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너무 오리지널을 만난 겐지, 걸쭉하고 뽀얗고 무거운 국물을 맛보았다. 당황스럽게 투박한 맛이었는데 한 입 두 입 먹다 보니 그 사이 한 그릇을 클리어했다.
 

하수가 바라 보기에 한 없이 난해한 메뉴조합, 가격은 저렴, 맛은 굿이다.

매운 양념옷을 입은 통통한 닭발이 등장했는데 나는 뼈가 있는 닭발을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그것도 시야가 닿는 공간이 70cm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매스꺼운 게, 아직도 나는 미식가가 되려면 멀었다. 친구들은 오독오독 쪽쪽. 맛있다며 닭발 무덤을 파헤치기 시작했고, 나는 고기국수에 얼굴을 묻고는 국물에 빠진 고기를 건져 입으로 가져가기 바빴다.
 
다른 테이블에서 김밥을 하나 둘 주문하기 시작했다. "우리도요 이모"라고 하고도 괜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메뉴들을 빤히 쳐다 보고 나면 공통된 식재료가 거의 없는데 이런 메뉴 라인업을, 그것도 아주머니 혼자 계속 유지하실 수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괜한 오지랖으로 가게를 나서면서 주인 아주머니께 여쭤봤다.

"이렇게 식재료가 전혀 다른 메뉴를 준비하시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안 팔리면 폐기하는 재료도 많으시잖아요."라고 하니, 그런 내가 가소롭다는 듯 "여태 해오던 일이라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고, 준비한 건 매번 다 팔리는데 버릴 게 어디 있어요"라며 여유를 보이신다. 맛에 자신 있는 고수에게서 풍기는 여유였다.

관련글 더보기